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슬 갑옷 (문단 편집) ==== 유럽 ==== ||[[파일:external/2.bp.blogspot.com/Knight_1190_2.jpg|width=500]]|| || [[12세기]] 말 [[서유럽]] [[기사(역사)|기사]]의 무장 || 유럽의 갑옷은 크게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소위 '전통적인' [[청동]]과 [[철(원소)|철]]로 만든 갑옷과, 로마의 적인 '야만족'이 만든 [[가죽]]과 [[사슬]]로 만든 것으로 나뉜다. 유럽 문화의 기초인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달시킨 형태의 갑옷들은 중세 유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후대 르네상스 등에서 로마시대 갑주의 형태를 모방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 제조기술과 형태가 그대로 전수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로마의 적들이 사용하던 사슬 갑옷이 그리스와 로마의 것을 누르고 그대로 이어져 중세를 평정했다. 일단 현재 유물 중에서는 기원전 3~4세기 갈리아인이나 에트루리아인의 사슬 갑옷이 제일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에서도 사슬이 사용되었다고 추정할만한 사료가 약간 있으며, [[이집트]] [[파라오]]의 복장 그림에서도 사슬 비슷한 것이 보이고, 사르마티아인과 페니키아인들도 썼을 가능성이 있지만 명확한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사실은 사슬 갑옷은 철기시대 이후 등장했고, 이집트 19왕조 이전 왕조 군대처럼 청동기시대 군대는 사슬 갑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동을 사슬 형태 갑옷으로 만들면 청동의 연성 때문에 사슬이 휘어지거나 뚝뚝 끊어질 수 있다. 사슬이 쉽게 끊어지지 않으려면 사슬을 철 같은 튼튼한 금속 재질로 만들어야 하므로, 청동기 시대 청동 재질 갑옷은 대부분 판금이거나 청동판을 가죽에 덧댄 형태였다.[* 이런 갑옷이 철기시대에 철갑으로 진화했다.] 따라서 누비아 왕조 이후라면 모를까 그 이전 이집트 왕조의 파라오가 사슬갑옷을 입었을 가능성은 없다. 로마인은 기원전 1세기 즈음부터 현재의 북부 이탈리아 지방에서 [[갈리아|골(Gaul)족]]과 전투를 치른 뒤 사슬갑옷을 사용했다. 쓸 만한 것이라면 뭐든지 받아들이던 로마의 전통대로 골족의 사슬갑옷을 받아들여 [[로리카]] 하마타(lorica hamata)라는 형태로 채용했다. 로리카 하마타 시절부터 이미 리벳링을 사용했는데, 내경 5 mm 외경 7 mm짜리 청동이나 철제 규격 링을 3만 개 정도 사용해서 한 벌을 제작했다. 로리카 하마타는 그 후 3세기 말의 군제 개혁 때까지 [[로마군]]의 표준 갑옷으로 오래동안 널리 사용되었다.[* 로마군하면 흔히 떠올리는 로리카 세그멘타타는 더 늦게 나타났고, 그마저도 하마타와 혼용해서 쓰이다가 얼마 안 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때 전파된 사슬갑옷이 13세기까지 계속 유럽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바이킹'''들이 중세 초기에 많이 사용하였다.]사실 4세기 고트족이 사용하던 것이나 12세기 십자군들이 사용하던 것이나 기본구조는 같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시대에 따라 세부적인 차이가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